2020. 9. 6. 15:37ㆍ영화 드라마 리뷰
▶ 구로사와 아키라의 "꿈"
"꿈"
일본 최고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는 자신이 어릴 때부터 꿔왔던 꿈을 각각 15분씩, 8가지 단편으로 묶어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영화 내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영화 외적인 것에서 눈길을 끌었었는데, 그를 정신적 스승으로 떠받들어 오던 할리우드의 영화 황제 스티븐 스필버그와 죠지 루카스가 자본적 도움을 주었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명감독들이 존경하는 구로사와 아키라. 지금부터 이 작품의 평을 시작하도록 하겠다 .
"이런 꿈을 꾸었다”
제1편 여우가 시집가는 날.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다. 구로사와라는 문패가 보이는 집 앞에서 어린 구로사와가 서 있다.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는데 다른 때와 다르게 하늘엔 햇빛이 나고 있다. 그의 어머니는 여우가 시집가는 날이라서 여우비가 내리는 거라면서 그 모습을 보면 안 된다고 가르쳐준다. 하지만 어린아이는 어머니의 충고를 잊고는 숲으로 들어가서 여우가 시집가는 행렬을 숨어서 숨죽여 본다. 집에 돌아온 아이가 이 사실을 말하자, 어머니는 여우가 용서하지 않으면 자살해야 한다며 칼을 쥐어준다. 아이는 다시 숲으로 뛰어들어 가는데, 아이 앞에 있는 것은 비 온 뒤 무지개가 뜬 아름다운 산뿐이다. 이 스토리를 보면서 나의 궁금증이 부모나 혹은 사회로부터 해서는 안될 일로 강요받았던 것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럴 수 도 있는 모든 일들을 지금까지 그래 왔기에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사회, 획일적인 사회에 대한 비판이 숨어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제2편 복숭아밭.
어린 구로사와는 누나들과 함께 밭으로 복숭아를 따 먹으러 가지만, 복숭아밭은 이미 그의 가족들에 의해 베어져 버린 후였다. 하지만 구로사와는 자기에게만 보이는 어떤 소녀를 따라서 쫓아가게 되고, 소녀를 쫓아 도착한 곳은 복숭아 밭이였다. 한 순간에 소녀는 사라져 버리고 어디선가 베어진 복숭아나무의 정령들이 나타난다. 정령들은 구로사와에게 "복수아 나무를 왜 잘랐냐" 고 나무라고, 이에 구로사와는 " 나는 자르지 않았어요 "라고 울면서 대답한다. 정령들은 알았다고 하면서 천천히 춤을 추기 시작하고, 꽃이 흩날린다. 이 장면은 정말 기억에 남을 만큼 화려하게 묘사되고 있다. 푸른 산속에서 갖가지 색채의 일본 전통 복장을 입은 정령들의 춤. 그렇게 춤을 구경하고 있는데 갑자기 정령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베어진 복숭아나무만 남아 있다. 제 2편에서 구로사와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제3편 눈보라.
구로사와와 동료 3명은 눈보라가 치는 산속에서 길을 잃고, 시계까지 고장이 나버렸다. 어둠과 눈만 가득 한 그곳에서 그들은 걷다가 지쳐 잠이 들고 만다. 그런데 갑자기 구로사와 앞에 눈의 정령이 나타나 그를 깨우고, "눈은 따뜻하고 얼음은 뜨겁다"라고 말하며 용기를 북돋아 준다. 힘을 얻은 구로사와는 동료들을 깨워서 가까이에 있었던 캠프를 찾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극한 상황 속에서 나약해 지기 쉽다. 그러나 생과 사가 달린 일에 있어서는 상상을 초월한 용기를 보여주는 것 역시 인간이다. 눈보라라는 극한 상황과 주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대장의 의지는 우리에게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제4편 터널.
시대는 대동아 전쟁 시절이다. 전쟁에서 포로가 되어 대원을 전원 잃고 살아남은 중령은 산자의 고통과 죽은 자에 대한 아픔에 사로 잡혀 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 혼자 밖으로 나오던 중령은 터널에서 죽은 부하의 혼령을 만나게 된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 곁으로 가고 싶다”라고 말하는 부하에게 “ 하지만 자네는 이미 죽었으니 자신이 속한 곳으로 돌아가라”라고 말하고 다시 터널 안으로 혼령을 보낸다. 그러자 죽었던 자신의 소대원 전원이 대오를 지어서 도열하듯 다가온다. 중령은 다시 그들을 위로하고 달래서 터널 안으로 들어가게 하고, 그들이 사라진 뒤 어두운 터널의 입구 쪽으로 경례를 붙인다. 이 스토리에서 중령은 터널을 통해서 그에게 전쟁에 대한 기억을 되살아나게 끔 하고 있다. 전쟁에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는 중령의 모습은 감동적이기도 하지만, 전쟁으로 인한 상처와 그 폐해를 느낄 수 있게 하고 있다.
제5편 까마귀.
미술관에서 고호의 그림을 보던 구로사와는 그림 '아를르의 도개교' 속으로 빠져들어가 그림 속의 사람들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구로사와는 귀를 자른 뒤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노란 밀밭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고호를 발견하고 말을 건네지만,고호는 바쁘다면서 무심하게 가버린다. 구로사와는 고호를 쫓아 고호의 여러 그림들 속을 돌아다니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멈춰 서는데, 그때 그가 서 있던 곳에 있던 고호의 그림 속 풍경은 까마귀 떼가 날아오르는 모습이다. 스토리 자체가 참 참신하다고 느껴졌다.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닮고 싶어 하는 것은 단순한 모방일 뿐이다. 아름다운 화면과 함께 이러한 주제를 건네고 있는 것 같다.
제6편 붉은 후지산.
갑자기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해서 후지산이 다시 활화산화 되고 용암이 무섭게 흘러내린다. 많은 사람들은 피난을 떠난다. 구로사와는 화산재와 섞인 붉은 연무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생기는 엄청난 폐해를 자극적은 색감과 함께 보여주고 있다. 과거 전쟁에서 핵으로 공격을 받았던 일본. 구로사와는 이러한 꿈을 관객에게 보여줌으로써 어떠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다.
제7편 울고 있는 악마.
세상에 종말이 와서 모든 게 황폐화된 어느 곳에 구로사와는 홀로 남겨져 있다. 모든 것이 변해버린 세상 속에서 그는 또 비참한 몰골의 다른 생존자를 만나게 된다. 그는 지구의 멸망을 초래한 인류의 아둔함을 한탄하며 어떤 곳으로 안내한다. 그곳엔 수많은 사람들이 귀신과 같은 몰골로 곡소리를 내며 신음하고 있다. 구로사와는 겁에 질려 그곳에서부터 도망을 친다.
제8편 물레방아 마을.
구로사와는 여행을 하다가 물레방아가 있는 어느 마을에 도착한다. 그곳은 현대 문명과 동떨어진 곳이었다. 그는 마을의 103세의 노인을 만나게 되고, 노인은 그에게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강조하며, 자연을 잊고 문명의 발전만을 생각하는 인간을 훈계한다. 죽음의 순간이 가까이 온 이 노인은 죽음이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고 믿기에 두려움 없이 죽음을 맞이한다. 온 마을 사람들과 마을의 악대는 신명 나는 연주를 하면서 노인의 죽음을 축복하며 노인의 뒤를 따른다. 이 스토리는 과학이 주는 편리성으로 인해 우리가 잊고 있는 소중한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매번, 구로사와의 작품을 볼 때마다 느낀 것이지만, 그가 사용하는 음향 즉, 묘한 피리 소리는 상당히 귀에 거슬리는 듯하면서 독특함이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그가 다루고 있는 영화의 스토리가 조금은 묘한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맥락에서 꿈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묘한 피리 소리와 함께 숲 속에서 여우가 시집가는 것을 훔쳐보는 주인공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그 속에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인간이 성장하면서 풀어야 할 문제들. 죽음, 예술, 파괴에 대한 구로자와의 생각과 메시지가 확실한 영화였다. 또한, 화려한 색감과 음향효과를 덧붙여 생각할 거리에 볼거리까지 제공하고 있었다.
사실, 미리 보았던 구로사와의 작품들은 이미 50, 60년대에 완성된 작품이었고, 흑백이라는 점 때문에 영화를 보는 것이 쉽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90년대에 완성된 영화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단편으로 끊어져 있기 때문인지 훨씬 영화에 몰입하기가 쉬웠고, 흥미로웠다.